괜찮은 걸까
주제를 정해서 글을 써볼까 했는데 너무 각 잡고 쓰려다 보니 주제 정하는데만 한세월이라, 그냥 근황에 대해 두서없이 써보려고 합니다.
2월 말쯤, 조직의 로드맵에서 상당히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고, 프로젝트 기간도 한 달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신입인 제가 감내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먼저 들었어요. 결국 시간을 갈아 넣는다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견적이 나왔지만, 워라밸을 챙기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이런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 안에 더 크게 자리한 것은 ‘나의 업무 퍼포먼스를 끌어올리고 조직 내에서 확실한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풍경 속에 나 자신도 들어가 있으려면 이 분야에서 전문가 또는 그에 준하는 수준까지 올라서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현재의 워라밸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 더욱이, AI가 파죽지세로 개발자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이 혼돈의 시대에 인간으로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기가 어떻게 보면 선택의 기로이자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신과 시간의 방 메타로 집에만 박혀서 밥똥잠 그리고 나머지는 머리 싸매고 코딩하기로 한 달 이상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큰 문제없이 기간에 맞혀서 프로젝트를 릴리즈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씩 간 떨리는 문의가 들어오긴 하는데,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직 치명적인 문제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무심코 '해치웠나?' 해버리면 적이 부활하는 클리셰가 있기 때문에, 단언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좋았던 점도 있었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이 더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첫째, 심리적인 압박감과 앞서나간 걱정이 문제였습니다. 전반적인 프로젝트 일정 관리 권한이 제게 주어지면서, 전체 일정을 나누고 각 시점에 구현해야 할 기능들을 대략적으로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특히, 테스트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 일정을 계획했는데, 실제로는 구현이 늦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제약들로 인해 일정 지연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고민했더라면 금방 해결할 수 있었던 것들도, 마음이 앞서다 보니 자꾸 서두르게 되었고, 오히려 불안감만 커졌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 필요한 기능에 집중하기보다는 발생 가능성이 낮은 여러 예외 상황을 지나치게 고려하면서 점차 불필요한 코드가 늘어났는데, 이 부분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돌이켜보면 훨씬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구현할 수 있었을 텐데, 앞서가는 걱정과 조바심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던 것 같아요.
둘째, 혼자만의 힘으로 명확한 방향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떤 기능이 필요하고,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장에 출시되어 있는 다른 프로젝트, 특히 오픈소스를 참고하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상급자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참고하고 따라가기만 하다 보면, 하급 카피 닌자에서 중급 카피 닌자로 승급하는 것이다 뿐이지, 나만의 고유한 기술이나 스타일이랄 게 없이 그저 타인의 뒤를 쫓기만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만의 색깔과 고유성을 추구하고 싶다는 생각과 언젠가는 자신의 역량으로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갈증이 있습니다. 뭐 아직 중급 카피 닌자도 되지 못한 개발 초짜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결국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범재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는, 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니까. 솔직히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가르마에 고속도로 생김),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