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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벌써 1월 중순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일하는 것도 바쁘고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하고 있어서 아마 다음 편은 구정쯤에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열심히 공부하기 (1월 ~ 2월)
11~12월 한 달 동안 체인링크 해커톤 프로젝트를 열심히 만들어서 제출했으나 성과는 없었기에 조금 낙심해 있던 차. 그래도 할 건 해야지 하고 다음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비트코인: 네트워크 챕터에서 연결되는 비트코인 테스트넷 노드 주소를 찾을 수 없어서 방치해 뒀는데, 생각해 보니 테스트 노드 잠깐 돌려서 피어 노드 주소 알아내면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btcd 클라이언트 받아서 실행해 보니 역시나. 네트워크 관련된 부분이 복잡하긴 했으나, 1회 완독에 성공했습니다. (다회독은 안 할 예정)
- Ethereum CTF 문제 풀이: 스마트 컨트랙트 쪽으로 진로를 잡고 싶어서 시작. 또 다른 이유로는 한글로 작성된 문제 풀이 글이 너무 적기도 하고 충분한 사전지식 없이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약간의 디테일함을 더하여 못해도 고등학생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해서 국내 블록체인 생태계에 기여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보면 글마다 형식도 들쭉날쭉이고 맥락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때 그렇게 차별화를 시도했던 것이 현재 개발자로 일하는 데 있어서 비개발 직군 동료분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Uniswap V2: 요것도 스마트 컨트랙트 쪽으로 진로를 잡고 싶어서 공부했습니다. 사실 DeFi는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해서 손을 놓고 있었는데, 실제로 공부해 보니까 어렵더군요.. 그래서 이때 '돈냄새 맡은 세계적인 수준의 천재들이 다 여기에 붙어있는데 나 같은 범재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 DeFi는 안 되겠다!' 이런 위기의식을 느끼고, 스마트 컨트랙트 개발자라는 진로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DeFi가 스마트 컨트랙트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Astar zkEVM과 해커톤 (3월 ~ 4월 초)
2월 중순쯤엔가 우연한 계기로 Astar Foundation에서 zkEVM을 론칭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론칭 기념으로 요키 오리진스라는 '일본 요괴 + 가샤폰'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합쳐놓은) 캠페인이 진행된다길래 너무 기대가 돼가지고 3월 중순에 출시될 때까지 목 빠지게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사전예약 보상으로 골든 요키 캡슐(erc-1155)을 줬는데, 캡슐을 받는 것부터 이더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이때 처음으로 거래소 통해서 이더 구매해서 테스트넷이 아닌 진짜 돈이 들어가는 트랜잭션을 처음으로 찍어봤습니다. 이때 쓴 돈은 요키 열심히 뽑고 융합해서 모은 포인트로 나중에 에어드롭 통해서 환급받긴 했습니다. 딱 쓴 만큼만? 요키 오리진스라는 캠페인이 일본 로컬 감성도 잘 살리고 캐릭터들도 귀여운데, 그저 일시적인 캠페인으로 끝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IP 베껴서 쓰는 건 사골까지 우려먹으면서 왜 이런 originality는 그냥 유기해 버리는지 참.
3월 중순에는 Astar zkEVM 출시 기념으로 진행된 해커톤에 참가했습니다. 4월 초까지 4주 조금 안되게 시간이 주어졌었는데 원격으로 진행이 돼서 혼자 참가했습니다. OpenZeppelin DAO 컨트랙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서 공부할 겸 DAO 웹페이지를 만들었는데, '햐쿠모노가타리'라는 일본 괴담을 모티브로 괴담 창작 DAO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때 개발 관련된 것보다 ai 돌려서 만든 이미지가 수묵화의 담백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캐릭터가 귀여워서 좋았습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no prize. 뭐 늘 그렇듯이 아무런 피드백이 없으니까 당최 뭐가 부족한지 알도리가 없지요. 프로젝트 분위기가 한국인 정서랑 맞지 않으므로 설명은 이쯤 하겠습니다.
계정 추상화(4월 중순 ~ 4월 말)
Astar zkEVM 론칭 캠페인에 참가하려고 처음으로 유료 트랜잭션을 찍어봤는데, 이때 사실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겜돌이 입장에서 모바일 게임의 경우는 99%가 계정을 생성하면 메일함에 사전 예약 보상이 자동으로 들어오는 시스템인데, 블록체인에서는 사전 예약을 하면 머클 트리 한편에 주소만 넣어주고 나중에 직접 claim 해야 되는 시스템이더군요. 마찬가지로 airdrop도 말 그대로 공중에서 살포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사용자가 직접 claim 해야 하는 구조. 보안적으로 어떻고 네트워크 트래픽이 어떻고 이유야 구구절절 있겠지만, web3와 친숙하지 않은 사용자 입장에는 왜 그냥 준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가져갈라니까 돈 내고 가져라가 그러냐?라는 식의 불편한 사용자 경험이 발생할 수 있겠죠. 애초에 그런 것도 모르고 크립토 하냐고 되물으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를 기점으로 더 많은 사용자들이 더 쉽게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적인 해결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명분이야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냥 제가 블록체인을 수수료 안 내고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erc-4337 계정 추상화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paymaster였어요. 수수료를 대납해 준다지 뭡니까. 이게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코드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여러모로 삽질한 경험을 블로그 글로 정리를 했습니다.
Chainlink 해커톤 재도전 (5월 ~ 6월 초)
5월 한 달은 해커톤 참가로 인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체인링크 해커톤인데, 지난번 no prize에 대한 리벤지 매치로 들어갔고, 팀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혼자서 도전을 했습니다. 그냥 혼자가 낫겠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해커톤 시작 날짜 기다리면서 시상 트랙을 수시로 확인을 했는데, zkSync의 'Native Account Abstraction'이 딱 눈에 띄더라고요. 마침 계정 추상화에 대해서 공부를 했던 참이라, 서드 파티 번들러에 따로 의존하지 않고도 블록체인에서 자체적으로 가스비 대납과 계정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게 굉장히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zkSync의 Native Account Abstraction + Privy의 embedded wallet을 결합하여 가스비 대납 및 소셜 로그인 기능을 통해 더 쉽고 빠르게 사용자들을 web3로 온보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혼자 한 달 동안 스마트 컨트랙트, 프런트, 백엔드 가지고 북 치고 장구치고 해서 만든 것이 'Cryptopasta'라는 서비스인데, 이것도 사실 블록체인 생태계를 배경으로 한 괴담 창작 플랫폼이라고 봐야 될 것 같네요. 제가 이쯤에 'SCP', 'Backrooms'같은 도시 괴담이나 '피어 앤 헝거'라는 호러 게임에 빠져서 유튜브로 관련된 영상만 주야장천 봤었습니다. 그게 어쩌다 보니 서비스를 기획한 명분은 좋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버렸다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누군가 필요로 할 것 같지는 않아도, 만들면서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제가 느낀 블록체인이라는 세계는 각 체인이 하나의 은행이나 국가 시스템처럼 돌아가면서도 탈중앙성과 검열저항성이라는 모순된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질서와 혼돈이 공존하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흥미로운 세계가 기술적인 영역을 넘어서,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새로운 이야기의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미약하나마 Cryptopasta라는 시도를 해봤던 것 같습니다. 오타쿠 같지만, 재밌잖아요.
그런데 결과는 예상외로 zkSync - Native Account Abstraction 트랙 1위! 하지만 우승을 해도 뭐 어디가 어떻게 좋았다 이런 피드백을 전혀 들을 수가 없으니 뭔가 개선해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게 좀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유일하게 체인링크 (전) 관계자 분으로부터 아이디어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좋았냐고 물어봤는데 답장은 못 받았습니다.
취준 (6월 중순 ~ 7월 중순)
해커톤 우승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이 시점부터 뭔가 사건들이 연달아서 일어나게 됩니다. 6월 중순에는 처음으로 커피챗을, 심지어 제가 들이댄 것도 아니고 이 광활한 웹 상에서 저라는 한 줌따리를 발견하신 멘토분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근데 또 막연하게 발견했다기보다는 제가 여기저기 흔적을 잘 남기고 다녔더라고요. 멘토분이 국내에 있는 web3 문제 풀이 플랫폼을 제작하신 분인데(이 정도는 밝혀도 되겠지?), 제가 2월 말엔가 거기 있는 30여 개의 문제를 이틀 만에 다 풀고 제 깃허브 링크를 프로필에 박아놓고 나왔습니다. 그걸 보고 뭐 하는 놈인가 궁금하셨던 것 같고, 마침 소속된 기업에서 구인공고를 낼 예정이라 기회를 주시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안해 주신 부분 참고해서 지원해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는데, 사실 이때까지 이력서, 포트폴리오 한 번도 안 만들어 봤고 면접도 단기 알바 면접이나 몇 번 봐봤지 기업형 면접은 안 해 봤거든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취업 언젠가 되겠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던 게 이때 발목을 잡습니다. 그래도 주어진 기회를 회피하는 바보 같은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어요. 2주간 챗지피티 첨삭받아서 부랴부랴 서류 준비하고, 전화 면접이랑 1차 대면 면접까지는 추천인 찬스로 가까스로 경험해 볼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준비가 미흡했고 인연이 아니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커피챗에서 멘토님으로부터는 지갑 서비스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던 건데, 막상 면접에서 팀장급인 분께 다시 물어봤을 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이때 흥미가 식어서 막 그렇게 아쉽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금 쌀먹 (6월 초 ~ 8월 초)
AKINDO라는 일본 해커톤 사이트는 Astar zkEVM 론칭 기념 해커톤에 참가할 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WaveHack이라고 해서 여러 구간(Wave)으로 해커톤을 나눠서 각 구간별로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상금을 수여하는 조금 특이한 해커톤이 진행이 됩니다. WaveHack은 여러 블록체인 프로젝트와 협업을 통해 개최되는데, 마침 zkSync가 합류해서 해커톤을 진행 중이더라고요. Chainlink 해커톤에서 zkSync과 인연이 있었던지라, Native Account Abstraction과 embedded wallet을 조합하여 프로젝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를 작성해서 제출을 했습니다.
근데 하다 보니까 또 욕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섭리. 원래는 그냥 활용 방법에 대한 가이드에서 마치려고 했는데, 독서 기록 dApp이라는 기획을 추가하고 조금씩 살을 붙여가는 프로젝트로 만들어서 좀 더 오랫동안 상금을 타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구직 프로세스가 겹쳐서 아쉽게도 프로젝트에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그래도 이 해커톤은 다른 해커톤과 다르게 심사위원 분들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피드백 반영해서 프로젝트 키우는 맛이 좀 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서 받은 상금으로는 다음 면접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안경이랑 정장 새로 맞췄습니다.
Edcon 참가 겸 도쿄 여행 (7월 말)
앞서 본 대면 면접 결과(뜨거운 합격)가 7월 15일에 나왔습니다. 여기서 다음으로 서류를 돌려볼 곳을 물색하는 게 정상적인 취준생의 행동이겠지만, 저는 다음으로 쌀먹에 도전할 해커톤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면접이 너무 힘들었어요. 이거 몇 번 더 했다간 진짜 대머리 되겠다? 극내성인간이라 그 실시간으로 내 모든 것을 평가받는다는 느낌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두더지가 땅굴 파서 숨듯이 현실에서 다시 도망치려고 했어요.
그런데 바로 4일 뒤에 다음 사건이 발생합니다. 19일 자정이 지나고, 새벽 1시 좀 넘은 시간에 X계정으로 AKINDO 관계자 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도쿄 Edcon에서 AKINDO WaveHack 관련해서 행사가 있고 발표자가 필요한데, AKINDO에 제출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데모 피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온 겁니다. 이때 저는 그냥 거절을 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여권도 없었어요. 일주일 안에 여권이 발급되리라는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일단은 일정 확인해 보고 답장드리겠다 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께 바로 말씀을 드렸어요. 이런 제안이 왔는데, 나는 잘 해낼 자신이 없다고. 근데 그냥 경험 삼아 갔다 오랍디다. 여권도 등기로 하면 금방 온다고 오늘(금요일) 가서 신청하면 다음 주 수요일에는 받을 수 있다고. 그래서 그냥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하고 그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수요일에 여권 받고 목요일에 비행기 타고 가서 금요일 오전 10시에 도쿄에 있는 UN 대학 행사장에서 데모 피치를 했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시는 볼 일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결국은 똥 한 바가지 거하게 싸고 도망치듯 뛰쳐나왔습니다. 그때 느꼈던 개발자라는 내 진로에 대한 회의감, web3 업계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회의감. 근데 그 이후에 보니까 이때를 기점으로 뭔가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오버띵킹하는 습관이 사라진 것 같거든요. 좀 막연하더라도 부딪혀보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충격요법으로 안 좋은 습관을 고친 케이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도쿄에 갈 때 길잡이로 동생(남)을 데리고 갔었는데, 사실 동생이랑 단 둘이 여행은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때 처음이었네요. 목요일에 4시 비행기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시부야에 있는 숙소에는 밤에 도착했습니다. 열려 있는 가게가 술집 뿐이라 편의점 찾으려고 조용한 골목에서 동생이랑 아무 말 없이 걸었는데, 그게 정말 좋았습니다. 다음날 발표 일정 끝나고 나서부터는 동생 여자친구랑 사촌 동생까지 합류해서 도쿄 타워, 센소지, 아키하바라 등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거는 스카이트리 옆에 있는 스미다 수족관. 물멍 때리기 좋고, 귀여운 펭귄들 많아서 좋았습니다.
두 번째 면접, 취업 성공 ~ 수습 딱지 떼기까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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