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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해의 첫날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스마트폰에 설치해 놓은 모바일 게임에 접속했습니다. 그리고 모아 놓은 모든 재화를 뽑기, 혹은 가챠라고 하는 시스템에 꼬라박았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확률적인 시스템을 활용해 새해의 운을 점치곤 하는데, 사실 한 번도 결과가 좋았다거나 성공했다는 느낌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판단의 기준이 될만한 데이터 쪼가리를 손에 넣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엔 다를지도'라고 잠깐 기대해 보기는 했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고 이제는 별다른 감흥도 없어서 그대로 잠이나 잤습니다.
수면 모드로 알림을 꺼놔서 못 봤던 것인지, 간 밤에 오리너구리군으로부터 온 새해 인사를 해가 중천에 걸릴 때 즈음에야 발견했습니다. 며칠 전 오래간만에 얼굴을 보고 저녁식사를 하며 그의 취업을 축하했었기에, 뭔가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새해 인사를 먼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오리너구리군은 먼저 연락을 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누구에게도 먼저 새해 인사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에, 저는 온전히 나의 힘으로 통제하기 힘든 그런 것에 내 존재를 구속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답장의 길이나 속도를 통해 '내가 이 사람에게 이 정도의 사람이구나'같은 것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될까요. 회피형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변명할 길이 없군.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나의 존재를 설명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천명(天命)'이었습니다. 인간의 직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무언가로부터 부여받은 과업이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내가 이 세상에 왔고, 그것을 완수하는 날 거두어진다는 그런 이야기. 이 세상에 던져진 채 그저 살아만 있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설명을 제시해 주기에 묘하게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 역시 확률에 의미를 투사하여 운을 점치는 행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백수생활 하면서 질리도록 행했던 -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고,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았습니다.
나는 언제 존재함을, 살아있음을 느끼는가.
떠올려보면 그 감각은 의외로 분명했습니다. 어떤 문제를 붙잡고 생각이 점점 정교해질 때, 흐릿했던 개념들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구조를 이룰 때.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 이건 이렇게 생각하고 설명할 수 있겠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또렷하게 빛날 때. 그것이 우수한지 아닌지, 성공으로 이어졌는지, 타인에게 인정받았는지와 상관없이 나의 지성이 반짝일 때 분명히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AI는 나의 동료가 될 수는 있어도, 나의 지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AI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사고를 정렬할 수는 있겠지만, 글이나 코드의 구조만큼은 끝내 나 자신의 표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 어쩌면 강박에 가까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그 탓에 작업이 더뎌지거나, 일이 바빠 블로그 글이 뜸해질 때면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내가 나 자신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며 조금 더 분명해졌습니다. 나르치스는 세상과 거리를 두었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골드문트처럼 세계를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사유의 반짝임 그 자체로 살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르치스에게서 이상할 정도의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다만 저는 나르치스처럼 그 반짝임을 오롯이 자기 자신 안에만 가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골드문트는 세계를 몸으로 통과하며 자신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그만큼 방랑할 용기도, 그만큼 흩어질 자신도 없습니다.(그리고 그만큼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만한 와꾸도 아니구요.) 다만 그의 ‘형상으로 남기려는 충동’만큼은 저 역시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자신에게만은 글쓰기와 개발이 생계를 위한 기술이기 이전에, 사유를 형상으로 남기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해보려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음악이나 미술 쪽에는 영 재능이 없더군요.)
지성이 반짝이는 순간을 코드와 글로 기록하고, 그 결과물이 누군가의 세계에서 형상화되어 작동하는 것을 보는 일.
나는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골드문트로 살 수 없다는 결핍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결핍 덕분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형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더 이상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이야기를 외부에서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조건을 배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음 글은 뭐가 되었든 다시 기술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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